첫째 날, 초인종이 울렸을 때 그녀는 희미한 불운을 예감했다. 예복을 입은 보안국원이 집까지 찾아오는 것은 좀처럼 없는 경우였다. 체포라도 당하지 않을까 굳어 있는 그녀에게 통지관은 반듯한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 종이를 펼친 후에도 그의 말을 온전히 알아듣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브라이어 소위? 그런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군요. 낯선 이름을 입에 담는 그녀의 눈이 소리 없이 깜박였다. 동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던 그녀였다.
고장난 인형 같은 얼굴로 동생의 마지막에 대해 들으며 그녀는 이질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이야기였다.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 튼튼한 아이도 역시 머리를 다친 건 어쩔 수 없었나 봐요. 어려운 말은 잘 모르지만 여기 적힌 게 아마 그런 의미겠죠. 딱 그 정도의 건조한 감상만이 남았다. 통지관이 돌아간 뒤, 혼자 남은 그녀는 한참 동안 현관 앞을 서성였다. 그럼 주말에는 못 오게 된 거려나. 그녀는 동생에게 묻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가 작게 탄식했다. 그녀는 종종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녀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쿠키 반죽을 전부 버렸다.
둘째 날은 놀라울 만큼 화창했다. 오늘 같은 날은 분명 비가 내릴 줄 알았는데. 그녀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마른 땅에 묻히는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부드러운 흙이 딱 동생의 몸 크기에 맞추어 짜인 나무 궤짝 위를 한 겹씩 덮고 있었다. 문득 그녀는 동생의 잠든 얼굴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손목을 붙들었지만 그녀는 못 들은 사람처럼 그 앞에 몸을 숙였다. 단단하게 못질이 되어 있는 궤짝을 손으로 뜯어 뚜껑을 열어 보았다. 안에 누워 있는 동생은 잘 포장된 냉동식품 같았다. 얼굴을 한 번에 알아보지 못한 점에 대해 그녀는 미안함을 느꼈다. 그 위로 옅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수도 없이 보아 왔으면서, 바보 같기는. 왜 내 동생은 곱게 잠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부끄러운 착각을 흙 아래 함께 묻어버리기 위해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잘 다듬어진 석판 위에 새겨진 이름이 없었다면 그녀는 발 밑에 묻힌 것이 자신의 동생이었다는 사실도 잊었을 것이다. 입안에서 읊조려 보는 낯익은 이름이 이렇게나 낯설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총을 들이대는 사람은 자신이 총에 맞아도 할 말이 없는 거예요. 미리 가르쳐 주지 못했지만 머리가 좋은 그 아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색을 잃은 눈이 저 아래 거꾸로 누워 있을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저 아이도 분명 알고 있었으니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날은 동생이 찾아오기로 했던 날이었다. 집이 조용한 덕분에 그녀는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린 딸이 무릎 위로 파고들 때에서야 그녀는 허공을 응시하던 시선을 추슬렀다. 조그마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쿠키를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커다란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 어린 소녀는 때때로 지나치게 감이 좋았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다. 작은 입술이 달싹이며 속삭였다. 삼촌 보고 싶어.
그녀는 팔을 뻗어 무릎에 매달린 딸을 안아올렸다. 등 위를 다독이는 손길에 소녀는 어깨에 묻은 얼굴을 비비며 물었다. 삼촌은 이제 아냐 집에 못 와? 그녀는 고민 끝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물기를 머금은 의문을 어떻게 해결해 주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 온기를 끌어안은 그녀의 머릿속에 정돈되지 않은 사고가 두서없이 흘렀다.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번 주말에는 수학 숙제도 봐 주겠다고 약속했다면서. 벽시계의 바늘이 막 오후 다섯 시를 지나고 있었다. 외출했던 남편이 돌아온 것 같았다. 그가 현관을 잠그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이제 집에 들어올 사람이 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돌연히 슬픈 기분이 들었다.
넷째 날의 아침, 그녀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지난주에 동생이 두고 간 꽃이 시들었기 때문이었다. 끄트머리가 노랗게 타들어 간 꽃잎이 손끝으로 건드릴 때마다 힘없이 바스라졌다. 이제 두 번 다시 동생에게 새 꽃을 선물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깨닫자 목구멍 아래가 뜨겁게 메어 왔다. 그녀는 시든 꽃다발을 움켜쥐고 불에 데인 사람처럼 황급히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말라비틀어진 이파리들이 꽃병 주변에 흩어졌지만 쓸어담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에는 남편이 꽃을 사 들고 돌아왔다. 하얀 난꽃이었다. 주변을 깨끗하게 정돈한 그가 빈 꽃병에 그것을 꽂아 넣었다. 새벽 동이 터 올 때까지 그는 밤새 그녀의 곁에 있어 주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진 못했지만 외롭지 않은 밤이었다.
소파 위에서 설핏 잠이 들었을 때 그녀는 꿈을 꾸었다. 어지러울 만큼 짙은 난꽃 향기가 온 사방에 가득했다. 낯선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눈앞에 서 있었다. 형태를 잃어버린 얼굴 대신 끄트머리가 노랗게 시든 꽃송이가 빈 자리를 메운 채였다. 그런 기묘한 꼴을 하고 있어도 그녀는 사랑하는 동생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가 발치에 떨어진 네 송이의 꽃을 주워 내밀었다. 잎이 망가져 고개를 숙인 꽃들이 매일 이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울지 않았다. 꽃을 받아드는 대신 나무토막 같은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제 더는 꽃을 가져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그녀 곁에는 이제 새로운 가족들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 후로 다시는 동생의 꿈을 꾸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 그녀는 무덤가를 찾았다. 몸을 숙여 깨끗한 새 꽃을 그 앞에 내려놓았다. 석판 위에 반듯하게 새겨진 이름이 저녁 이슬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이름 뒷부분을 덮어 보았다. 머리글자가 같은 동생의 이름을 감추고 나면 그것이 마치 자신의 묘비처럼 보였다. 요르 브라이어. 나직이 소리내어 읽다 보면 이 아래 누워 있는 것이 동생이 아니라 자신이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그녀는 이따금 자신이 떠난 후에 남겨질 동생에 대해 떠올리곤 했었다. 유리, 비밀이지만 누나도 가끔 일하다가 칼에 맞는답니다. 다른 사람에게 칼을 들이대는 사람은 본인이 칼을 맞아도 할 말이 없는 거니까요. 뒤늦은 고백과 함께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거짓말쟁이 누나를 위해서도 상냥한 동생은 무덤 앞에서 진심을 다해 울어 주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면 역시 먼저 떠난 것이 동생이라서 다행이었다. 그 아이라면 분명 이 무거운 부재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발 밑에 거꾸로 누워 있을 동생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그녀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