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꽃 3부작 3

[下] 낙화

더보기  어떤 미래는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소녀는 침대맡에 앉아 있는 반려견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미 완전한 일몰이 지난 시각이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무구한 눈동자가 새카맣게 빛났다. 그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이가 긴 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내민 반려견이 축축한 혓바닥으로 뺨을 핥아 주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하얀 꼬리가 바닥을 쓸었다. 이불 끄트머리를 그러쥐었던 작은 손이 부드러운 털로 덮인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소녀는 곧 몸을 일으켜 짧은 다리로 바닥을 딛었다. 창틈으로 비스듬히 흘러든 달빛이 복도를 비추었다. 발소리를 죽여 아버지의 방 앞으로 다가간 소녀는 닫힌 문 위에 가만히 얼굴을 기대었다. 아이의 머릿속에 괴롭고 난잡한 속삭임이 스멀스멀 흘러들었다.  얼마간 그러..

2차 창작/글 2023.02.06

[中] 잔화

더보기  다섯 시간 전이었다. 맞은편에 걸린 시계가 네 시 반을 가리켰다. 지금은 오전이던가, 오후던가. 타자기 앞에 앉은 젊은 국원의 피곤한 눈이 초침을 좇았다. 평소만큼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표류한 시간을 되짚었다. 콘크리트 벽이 사방을 둘러싼 이 건물 내에서는 낮과 밤을 가늠하는 것도 수월치 않았다. 처음 여기 앉았을 때가 정오였으니 지금은 아마 늦은 오후다. 장장 네 시간이 넘도록 꼼짝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고개를 숙인 그가 마른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여태 제목조차 붙이지 못한 보고서에 단 한 글자도 적어 넣지 못했다. 손가락 사이로 넋이 나간 눈동자가 책상 끄트머리를 응시했다. 타자기 앞에 뿌리를 박은 듯 앉은 그는 오래도록 갈등하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가까스로 깨..

2차 창작/글 2023.02.04

[上] 헌화

더보기  첫째 날, 초인종이 울렸을 때 그녀는 희미한 불운을 예감했다. 예복을 입은 보안국원이 집까지 찾아오는 것은 좀처럼 없는 경우였다. 체포라도 당하지 않을까 굳어 있는 그녀에게 통지관은 반듯한 종이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 종이를 펼친 후에도 그의 말을 온전히 알아듣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브라이어 소위? 그런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군요. 낯선 이름을 입에 담는 그녀의 눈이 소리 없이 깜박였다. 동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던 그녀였다. 고장난 인형 같은 얼굴로 동생의 마지막에 대해 들으며 그녀는 이질감을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이야기였다.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 튼튼한 아이도 역시 머리를 다친 건 어쩔 수 ..

2차 창작/글 202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