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84

바다의 노래

더보기 변덕이 심하기로 새벽녘의 바다를 따라올 것이 있을까. 해군이라는 직업은, 어쩌면 바다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다 그 자체와 싸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바닥만한 조각배에 몸을 실은 노련한 정찰병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에서는 이미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거칠게 몰아닥치는 파도 위에서 키를 붙든 몸이 맥없이 흔들렸다. 감이 좋고 몸이 잽싸 정찰병이라는 직책을 얻은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스스로의 감을 지나치게 맹신한 모양이었다. 괜한 만용을 부렸나, 초저녁부터 공기가 눅눅한 것이 심상치 않았는데. 굵어진 빗방울이 하얗게 질린 뺨이며 콧잔등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뒤늦은 후회 대신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돛대를 힘줄이 돋도록 부여잡았다. 수영이라면 제법 자신이 있었다. 해군이라..

2차 창작/글 2020.04.28

후유증

더보기 거꾸로 뒤집힌 순찰차가 불길 속에 처박혀 타올랐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의 비명이 무너진 잔해 아래 메아리치는 듯했다. 히지카타는 처참한 기분으로 파편 위를 밟았다. 검붉은 땀방울이 까맣게 그을린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야마자키가 보고한 폭발 예정 시각보다 삼십 분 이른 시간이었다. 계산에 오차가 있었던가. 그의 유능한 밀정은 망가진 시멘트 더미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 언뜻 멀리서 그쪽을 보았을 때, 히지카타는 야마자키가 손에 쥔 것이 사람의 머리카락인 줄로 알았다. 움켜쥔 손가락 사이에서 후두둑 끊어지는 그것은 엉킨 전선이었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기계의 잔해를 손에 든 야마자키가 흐느끼고 있었다. 가슴께에 닿도록 떨군 턱 아래 맺힌 물방울이 무릎 위로 떨어지고, 어느 쪽 손인지 알아..

2차 창작/글 2020.04.16